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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학교 수업

"나는 여기 없었다." 감상평 (4학년 1학기 논리적사고 보고서)

by 시아나 2022. 1. 14.

목차

내가 생각하는 아들러 심리학이란

 

영화 <너는 여기에 없었다>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아들러의 목적론이 무엇인지 이해를 해야 목적론의 관점으로 영화를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영화에 대해 논하기 전에 아들러 심리학에 대해 정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영화 감상문을 쓰기 위해 프린트물을 반복해서 읽고 교수님의 수업도 여러 번 반복하여 들어보았으나 처음에는 아들러 심리학이라는 주제가 너무 어렵게 느껴졌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학문의 관점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삶의 관점에서 목적론을 바라볼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살아가면서 내 삶을 바꾸기 위해서라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라고 생각을 하니 아들러 심리학이 어떤 것인지 조금씩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제가 아들러 심리학의 목적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저는 내가 원하는 나 자신이 될 수 있게 하는,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이후에서는 제가 아들러 심리학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정리를 하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먼저 아들러 심리학이 바라보는 과거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미움받을 용기에서는 목적론의 반대되는 프로이트의 인과론을 소개하면서 이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과거가 현재의 원인이 되는 인과론과는 다르게 목적론은 과거는 과거일 뿐이고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결정할 용기와 목적을 통한 자기 확신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에 미래를 바꾸기 어렵다고 하는 인과론과는 달리 목적론에서는 목표 설정만 잘하고 현재를 바꾸면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실패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현재의 자신이 과거에 자신이 설정해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였을 경우, 목표에 실패한 원인에 대해서는 인과론에서는 과거에 본인이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에 목표에 달성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목적론에서는 애초에 목표가 명확하지 않았고 제대로 설정되어 있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무엇을 원하는지, 목표에 도달하게 되면 무엇이 좋은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미래의 목표보다 현재 상황에 만족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아들러는 열등감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아들러는 열등감은 타인과 나를 비교하기 때문에 생긴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아들러는 열등감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열등감은 사람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하고 인간이 움직이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열등감이 콤플렉스가 되면 이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자기 자신이 열등감을 나쁜 것이라고 평가한다면, 이는 좌절감을 불러일으키고 열등감을 숨기게 되어 본인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말합니다. 아들러는 열등감에 직면하고 나를 마주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아들러는 아이를 기르는 부모에게 아이와 부모의 삶의 몫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이의 삶은 아이가 결정하는 것이고 부모의 삶은 아이의 삶과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만약 부모가 아이를 걱정한다면 아이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닌 아이가 모르는 다양한 길이 있음을 보여주고 아이와 함께 운동을 가거나 영화나 음악회에 참여하라고 합니다.

 

이외에도 아들러는 개인의 행복에 대해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다음 3가지를 충족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첫째,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라.

둘째, 타인의 과제와 나의 과제를 구분해라.

셋째, 남이 나에게 무엇을 해주느냐가 아니라 내가 남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실천해라.

3가지를 생각하고 실천한다면 비로소 행복이 보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아들러 심리학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아들러 심리학을 보고 저는 아들러가 타인보다는 개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위와 같은 생각을 한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아들러는 타인을 바꾸는 것보다 본인을 바꾸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여럿이서 살아가야 하는 사회 속에서 상처받지 않으려면 나 자신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타인과 나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들러 심리학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를 해보았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영화 <너는 여기에 없었다>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영화에 대한 간단한 줄거리

 

린 램지 감독의 영화 <너는 여기에 없었다>는 관객에게 있어 매우 불편한 영화였습니다. 처음 영화를 볼 때는 이게 무슨 내용의 영화지라는 생각으로 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지금 내가 무슨 영화를 본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후 영화 해석본을 찾아보니 그 후에서야 아 이 장면이 이런 의미의 장면이었구나. 이런 느낌의 영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영화는 그만큼 심오한 영화였고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이 다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 포스터
끔찍한 유년기와 전쟁 트라우마로 늘 자살을 꿈꾸는 청부업자 ‘조’. 유력 인사들의 비밀스러운 뒷일을 해결해주며 고통으로 얼룩진 하루하루를 버텨내던 어느 날, 상원 의원의 딸 ‘니나’를 찾아 달라는 의뢰를 받고 소녀를 찾아내지만, 납치사건에 연루된 거물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렇게 다시 사라진 소녀를 구하기 위해 나서는데… 죽어도 아쉬울 것 없는 살아있는 유령 같은 인생에 조용히 나를 깨우는 목소리 “Wake up, Joe!”

네이버 영화소개에서는 <너는 여기에 없었다>의 줄거리를 위와 같이 표현합니다. 이러한 소개는 영화의 전체적인 맥락을 잘 표현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 해당 내용을 숙지하고 영화를 보면 이 영화를 더 이해하기 쉬울 것으로 생각합니다.

 

영화 속 아들러 심리학을 찾기 전에 영화의 줄거리를 간단하게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영화의 시작은 누군가 숫자를 세고 주인공 가 사진을 태우고 망치에 묻은 피를 닦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영화 속 조는 병에 걸린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조는 어머니를 돌보면서 유력 인사들의 뒷일을 해주는 청부업자의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를 돌보는 조

그러던 어느 날, 한 의원으로부터 누군가의 구출을 의뢰받습니다. 주지사 캠프에 납치당한 의원의 딸 니나를 구출해 달라는 것이 그 의뢰였습니다. 조는 의뢰대로 니나를 구출해 냈으나 주지사에게 다시 니나를 뺏기게 됩니다. 이후 입막음을 위해 보내진 사람들에 의해 의뢰요청을 한 의원이 제거되고 어머니까지 잃게 됩니다. 이에 절망한 조는 니나라도 구하기 위해 주지사의 집에 잠입하게 되고 결국 니나를 찾아내지만 니나는 주지사를 살해한 뒤였습니다. 조는 절망하게 되고 아이처럼 주저앉아 울게 됩니다.

울고있는 조

조와 니나는 저택을 빠져 나와 한 식당에서 앞으로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니나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조는 자살을 하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이때 니나가 “wake up Joe”라며 조를 깨웁니다.

 

조를 깨우는 니나

그 후 니나가 “It’s a beautiful Day”라고 하며 영화가 끝나게 됩니다.

 

시간순으로(장면으로) 본 영화 속 아들러 심리학

 

영화의 줄거리를 살펴보았으니 이제 이번 보고서의 본론인 아들러 심리학의 관점에서 어떻게 영화를 볼 수 있을지 살펴보겠습니다.

 

영화 속 조는 과거의 트라우마에 갇혀있는 사람입니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이렇게 과거에 매몰되어 현재에 머물러 있는 사람을 현재에 속박되어 주체를 상실한 수동적인 존재자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제가 본 영화 속 조는 미래에 대한 의지 없이 하루하루를 그저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미래에 어떻게 되고 싶다는 목표도 없고 그저 과거를 반복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조는 이렇게 삶에 의지가 없고 계속 자살 기도를 하는 상황 속에서도 다시 살기 위해 발버둥 치고 결국 살아남았습니다.

 
자살을 기도하는 조

아들러 심리학을 통해 조를 살펴본다면 조는 앞으로의 삶에 대한 목표도 없고 그냥저냥 살아가는 자신의 지금 상황에 대해 누군가를 탓하며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과거에 자신을 학대한 자신의 부모와 자신을 전쟁에 참여하게 만든 상황, 이를 회피하지 못한 과거의 자신을 탓하는 것일 뿐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들러의 목적론은 조의 과거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재 상황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모든 일에 대해 조 자신이 주체로서 마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현재 조는 이를 필사적으로 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조가 과거의 아동학대에 대한 트라우마를 생각하며 고통받는 장면을 아들러 심리학에서 바라본다면 나를 존중하지 않은 부모에 대해 가여움을 느끼고 이에 상처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조가 부모에게 받은 상처는 조가 부모를 가여운 사람, 이상한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고 자신을 이상한 사람, 가여운 사람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불행한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가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장면

아들러 심리학에서 현재 조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 스스로 자신이 학대를 받았고 전쟁에 참여했다는 사실에 갇혀서 현재의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다고 할 것입니다. 조가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과거의 학대받은 자신을 인정하고 이를 본인을 탓하는 것이 아닌 학대를 받은 것은 조의 부모가 이상한 사람이었고 가여운 사람이었다는 것일 인식해야 합니다.

 

또한, 아들러 심리학의 관점에서 조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어떻게 바뀌고 싶은지를 인지하고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현재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스스로 가지고, 벗어나기 위해 심리치료를 받든지 상담을 받든지 등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니나의 살해 후 충격을 절망하는 조  

니나가 사람을 살해한 것을 목격하고 절망하는 조를 보며 아들러 심리학의 관점에서는 이는 타인과 조의 과제를 분리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니나가 살해를 결심하고 자의로 도망을 친 것은 니나 스스로가 결정한 것입니다. 만약 조가 니나의 살해를 막지 못했다는 것 자체에 절망했다면 이는 조가 니나와 자기의 과제를 분리하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장면에 대한 내 생각

 

앞서 영화 <너는 여기에 없었다>에 대해 아들러의 관점에서 해석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제는 중요한 장면 몇 개를 보면서 제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조는 어머니를 돌보다가도 칼을 입에 넣는다든지 그 칼을 자신의 발 쪽으로 떨어뜨리며 논다든지 열차가 들어오는 역에서 몸을 기울이는 등 자살을 기도하는 듯한 행동을 합니다.

 

자살을 기도하는 조

이러한 장면을 보았을 때 조는 매우 위태로운 상태이며 언제든지 삶을 포기할 수 있는 상태라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조는 죽음을 바라고 있으며 삶에 대한 미련이 거의 없음을 암시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부르면 자살을 기도하다가도 바로 달려가는 등 조가 어머니를 중요시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조의 마지막 희망이 어머니이며 마지막으로 남겨진 보루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현재까지 조를 살아있게 한 것은 어머니를 챙겨야 한다는 책임감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는 거래처 주인의 아들이 조가 작업을 하는 장면을 목격하자 해당 거래처와의 거래를 끊는 등 자신의 일(청부업자)과 관련된 부분을 보며 빈틈이 없도록 하는 성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인정이 없는 듯한 모습도 보여줍니다. 자신의 삶은 포기하고 싶어 하면서 일에 대해서는 철두철미하게 지킨다는 점이 무척 모순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거래처와 거래를 끊는 조

다음으로 볼 장면은 조가 트라우마로 인해 비닐 속에서 가쁘게 숨을 쉬는 장면입니다. 다른 영화비평문 중 일부는 이 장면을 보고 자살 기도를 하는 장면이라고 해석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장면을 보고 조가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해 과호흡 증상을 겪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죽음을 원하는 조가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장면으로 보았습니다. 그 때문에 이 장면이 몹시 모순적인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이는 마치 살고 싶지만, 과거의 고통이 느껴질 때면 죽고 싶을 만큼 힘들다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고통받는 조

다음으로 볼 것은 조가 트라우마를 회상하는 장면입니다. 영화 중간중간에서 조에게 어떤 트라우마가 있는지에 대해 잠깐씩 보여줍니다. 조의 트라우마 중 하나는 아동학대이고 다른 하나는 전쟁참전의 후유증입니다.

영화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장면이 조가 트라우마 때문에 고통을 받는 장면인데 영화의 중간중간에 이러한 장면을 넣음으로 인해 관객은 영화를 보면서 해당 장면이 현실인지 조의 상상인지를 계속 혼동하게 됩니다. 앞서 제가 말했듯이 이 영화가 불친절한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가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장면

이렇게 중간중간에 조가 고통받는 장면을 넣음으로 관객이 마치 조에 자신을 이입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외에도 조가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을 멀리서 잡거나 간접적으로 비추고, 다른 사람이 조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은 적나라하게 비춤으로 조의 폭력을 정당화하고 조가 왜 폭력을 행하는지를 보여주려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조의 시점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보게 함으로써 과연 조가 휘두르는 폭력은 정당한 폭력인가를 생각하게 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조의 폭력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 니나를 다시 구출하러 저택으로 침입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CCTV를 통해 저택에 침입하는 조를 보는 듯한 느낌의 장면은 좀 더 객관적으로 조의 폭력을 직관하게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를 보면서 저는 감독이 트라우마로 인해 폭력을 행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조가 니나가 있는 저택을 습격하는 장면

마지막으로 볼 장면은 조와 니나의 재회 장면입니다. 결국, 조는 니나를 만나게 되었지만 니나는 이미 살인을 저지른 후였습니다. 이 장면에서 어머니를 잃었을 때도 무너지지 않았던 조가 처음으로 무너집니다. 마치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주저앉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앞서 일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완벽하게 하려고 했던 조의 성격과 연관 지어서 해석했습니다. 조의 마지막 의뢰는 니나를 무사히 구출해 내는 것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조는 어머니의 복수를 하고 마지막 의뢰를 이행하려 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조가 도착했을 때는 니나가 원수를 이미 살해한 뒤였고, 니나가 원수를 살해하게 함으로써 조는 어머니의 복수도 하지 못하고 니나를 무사히 구출해 내 달라는 의뢰도 완수하지 못한 상태가 되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 때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무력감에 빠진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니나의 살해 후 충격을 절망하는 조  

하지만 조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남아있을 니나를 찾으러 갑니다. 조와 재회한 니나는 조에게 괜찮다면서 오히려 위로해줍니다. 조는 니나와 식당에 갔을 때까지도 무력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자살을 기도하는 꿈을 꾸었지만, 그 꿈에서 니나가 벗어나게 해 니나가 과거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조를 현재로 돌아오게 할 수 있는 희망이 될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영화 <너는 여기에 없었다> 영화를 시청하고 제가 생각한 영화 속 의미, 아들러 심리학의 관점에서 본 영화 속 조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해당 과제를 하면서 제가 느낀 점과 참고문헌을 정리하면서 감상문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